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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65세 이상 무료관람
12-02-03 13:48 5,149회 0건
http://www.moca.go.kr/index.do?_method=main [임응식]展 전시안내 전 시 명 임응식 전 주 최 국립현대미술관, 한겨레 신문사 전시기간 2011년 12월 21일(수) ~ 2012년 2월 12일(일) 전시장소 덕수궁미술관 작 품 수 사진 및 자료 200여 점 관 람 료 5,000원 (성인일반, 덕수궁 입장표 포함) 관람시간 오전10시 ~ 오후7시(화~목) / 오전10시 ~ 오후9시(금~일) 휴 관 일 매주 월요일 임응식은 1950년대 이래로 사진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진계몽운동가 및 교육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한국 사진의 근대화를 이룬 인물로 평가된다. 1950년 6.25 전쟁 이전까지 한국 사진은 일제시대부터 유행한 예술사진, 즉 회화적인 분위기를 띠는 아름다운 사진이 주를 이루었다. 임응식은 6.25 전쟁의 종군사진기자로 참여하면서 사진의 사실적 기록성에 눈을 떴고, 그 이후로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인 '생활주의 사진'을 주창하게 된다. 그가 주창한 '생활주의 사진'은 사회현실과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인간의 생활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젊은 작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50-60년대 한국사단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임응식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1930-40년대 '예술사진' 시대의 작품부터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1950년대의 소위 '생활주의 사진',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작가가 일정한 주제를 내걸고 촬영하여 『공간』지에 연재한 '한국의 고건축'과 '한국의 예술인'시리즈를 시대 순으로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 동안 거의 발표되지 않은 시리즈인, '명동 사진'이 출품되는데, 유족이 소유한 필름을 인화하여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작가가 명동 거리를 다니면서 명동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스냅 사진으로 찍은 것들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변화하는 명동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외에도 작가와 함께 활동한 동료, 제자들이 출품하는 <임응식 초상사진-기억의 헌사>와 초기 부산에서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작은 역사전: 임응식과 초기 부산사진>도 전시에 포함되어 작가의 삶을 보다 입체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사진 - 예술사진과 조형사진 (1930~1940년대) 한국사진사에서 1950년 이전에는 일제시대 이후 답습되었던 예술사진, 소위 '살롱사진'이라 불리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예술사진이란 회화적인 기준에 맞춰 사진을 창작하는 것으로, 주로 풍경이나 정물을 대상으로 하여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 사진들은 회화의 구도를 답습하고 재료를 모방하면서 마치 인상파 회화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향을 보였다. 임응식이 부산여광사진구락부 시절에 제작한 작품 <농가>(1932)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얼리즘 사진 - 종군사진과 생활주의사진 (1950~1960년대) "6·25 전쟁은 나의 사진 이념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이른바 '살롱사진'이라 일컫는 예술사진의 경향에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기존의 사진 경향은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했을 뿐 현실감각은 전혀 없었다. 인간의 문제, 사회의 문제, 미래의 문제 등 사람이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점에 대해서는 완전히 외면해 버리는 경향을 나는 계속 추종할 수 없었다." (회고록 中) 임응식이 주창한 생활주의는 리얼리즘 계열이긴 하지만, 그는 전쟁을 기록하면서도 적나라한 표현방식은 피하는 편이었다. 그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아닌, 다소 소박한 형태의 리얼리즘이었으며 여기에는 일본에서 1930년대부터 전개된 신흥사진 운동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생활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리얼리즘과 사회주의가 동일시되던 시대 분위기에서 사회주의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재 사진 (1960년대~1980년대 초) 1960-70년대에는 한국의 전통과 미를 재발견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작업들이 역사, 문학, 미술,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다. 임응식은 1960년대 후반기에 <공간>지 편집 주간을 지냈으며, 이 무렵 <공간>을 통해 발표된 고건축 사진들은 1976년에 한국의 고건축 시리즈로 발간되기도 했다. 임응식의 문화재 사진을 통해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기록성과 예술성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의 사진은 건축물 자체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조형성이 강조된 아름다운 화면 구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예술인의 초상(1960년대 초~ 1980년대 초) 1969년부터 시작된 작업으로, <공간>의 주간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연재되었다. 이 사진들은 잡지 연재가 끝나고 3년 뒤 1982년에 풍모(風貌)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총 150인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건축가, 서양화가, 서예가, 동양화가, 배우, 작곡가 등 예술인과 문화예술계 인사들로, 사진 속에서 자신의 직업을 대표할 수 있는 포즈를 연출하고 있다. 작품: 시인 서정주, 박두진 동양화가 천경자, 박래현, 김환기, 작곡가 안익태, 동양화가 노수현, 변관식, 허백련, 사진가 현일영, 조각가 김종영 등 명동 사진 임응식이 명동을 주제로 찍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서울 수복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종군사진기자로 투입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1950년의 명동을 촬영한 이래로 그가 사망하던 해인 2001년까지 시종일관 명동 거리로 출사를 나갔다고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문화예술의 공간에서 상업공간으로 변화해 온 명동은 화려하고 번화한 곳으로, 현대화 되어가는 대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명동을 주제로 찍기 시작한 것은 50년 9/28 수복 때 인천 상륙작전에 사진반원으로 종군하여 폐허가 되어 버린 명동의 모습을 비통한 감정으로 찍었던 그때부터이다. 환도 후 줄곧 30년을 두고 이틀이 멀다하고 시시각각 변모하는 그 모습을 사진에 기록해 왔다. 나의 생활 속에서 명동을 떼어놓을 수 없다. 찍고, 찍고 또 찍어도 한없이 찍고 싶다. 명동의 망령이라도 붙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임응식, 「나의 명동」, 『신동아』 (동아일보사, 1980년 5월호), p. 93) "돌아가시기 얼마 전 따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평소에 다녔던 커피숍 등 명동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차 밖으로는 못나가고 차 안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찍었다는군요. 평생을 주제로 한 명동의 마지막 촬영이었죠. 죽는 순간까지 명동을 카메라로 담은 셈입니다." (황규태, 「7인의 사진가, 임응식을 말한다」, 『아트 인 컬처』 (미술사랑, 2001년 3월호),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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