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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져가는 역사와 그 역사 속 나의 이야기
21-06-07 16:37 1,143회 0건


4.19하면 나에겐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며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그 당시 학교 전교생이 의무처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질서정연하게 깃발을 앞세워 학교 교문을 나서 부산 광복동 시청 앞까지 시위에 참가하고 각자 해산했었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 시절 집권한 여당의 정치 수뇌부들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있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온갖 부정부패 거짓 속임수로 3.15 부정선거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부정선거에 분통을 터트리며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까지도 나서 겉잡을 수 없이 시위가 확산 되자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서슴없이 겨누었다.

마침내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오르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전국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정부는 더이상 시위를 멈출 수 없게 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통령인 이기붕 가족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시위 당시 나에겐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 남매는 중 막내인 남동생이 집안의 기대주였다. 시위가 한창이던 날 초등학생인 남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찰서가 위치한 부산 서면 로터리로 달려갔다. 동생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사람들 틈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와르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히 변두리 쪽이었기에 다급히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이 눈에 띄어 얼른 그곳으로 숨어들었다.

동생이 이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을 조이며 숨 죽이고 한참을 있었다.

총소리도 멎고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 뒷길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동생이 집에 있었다. 나는 얼마나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같은 한민족으로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일과 그로 인한 아픔, 두려움을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 시니어 기자단 김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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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가 안국동에 있으므로 종로까지 걸어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할 때였다.

광화문에서부터 종로 거리를 고려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어깨에 어깨를 엮어 3.15 부정선거를 외치고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진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자기 생명의 위협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학생과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뚝 터진 물결처럼 함성을 질렀다.

겉잡을 수 없는 인파 속에 밀려 나 역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인파에 밀려 돈화문 쪽으로 휩싸여가고 있었는데 종로 쪽에서 우리를 향하여 실탄이 든 총을 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골목길로 피해 도망가기 시작했고 나도 친구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총에 맞으면 바로 죽는 그 위협적인 순간을 피해 겨우 창경원으로 살짝 피신해있었고 그 이후 돈암동 집까지 겨우 걸어올 수 있었다. 집에선 어둑어둑해지는데도 학교에 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음에 식구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다.

 

나의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한 명의 학생이 생각난다. 김주열 학생은 4.19때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학생이었다.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7세 고등학생,

시내 나갔다가 데모에 합류하여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는데 희생된 시체를 숨기고자 돌을 매달아 저수지에 버려졌다.

28일 만에 한 어부에 의해 차가운 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시신을 올려 보니 최루탄이 눈을 통과하여 머리에 박힌 채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실은 해외통신사까지 퍼져 여러 언론에 밝혀졌으며 한 아이의 죽음에 전국의 어머니들이 분노하여 일어났고 마산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등학생들도 역시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참여했다가 4학년이었던 어린아이도 시위대에 깔려 죽기까지 했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젊은 학생들과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의를 위해,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며 숭고하고 안타까운 젊은이들의 생명이 받쳐졌다. 이 많은 귀한 생명으로 찾은 자유대한민국을 잘 지키고 보전해 나가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4.19의 날이 학생과 시민이 중심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운동을 기념하는 법정기념일임을 잊지 않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나, 앞으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다같이 정신 차리고 노력하자!

-시니어 기자단 곽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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